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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스페셜

음악적 “꼰대”의 탄생과 그 기원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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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명반 스페셜 19 ]

 

 


▲ “아바(ABBA)”를 대표하는 앨범 “Arrival”(1976). 이 앨범이 처음 우리나라에 수입될 때, 1번 트랙 “When I Kissed the Teacher”가 잘린 채로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학생이 교사에게 키스를 한다는 가사가 문란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음악의 본질은 댄스!

 

내가 아는 사람이 내게 이런 말을 해주었어. 음악의 본질은 댄스다! 생각해보니까 그 말이 맞는 거야. 이 말 덕분에 나는 음악에 대해 좀 더 열린 사고를 갖게 되었지. 이 말에 기초해서 모든 음악을 대하다 보니, 모든 음악이 좋게 들리는 거야. 나도 실은 음악적으로 꽤 꼰대 기질이 강했거든. 요즘 나오는 음악은 음악 같지도 않다는 말이나 하면서 말이야.”

 

2019127일 토요일, 내가 참석한 한 모임에서 내 옆에 앉은 그가 내게 전해준 말이었다. 평소, 댄스 음악에 별 흥미가 없던 나였기에, “음악의 본질은 댄스라는 말이 조금 거슬리는 면이 있었지만, 이 말 덕분에 음악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고 말하는 그의 웃음 진 얼굴을 보니, 왠지 이 말에 수긍하고 싶어졌다. 어떤 음악에 대한 편견은 되도록 갖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게다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은 메탈이었다. 메탈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니, 수긍하지 않을 수 있으랴.

 

정말로 그렇겠네요. 사실 재즈나 록도 처음엔 댄스 음악으로 시작했으니까요. 심지어 발라드조차도, 처음엔 클래식 춤곡에서 유래했잖아요. 클래식에도 왈츠 같은 춤곡이 있고요. 하지만, 음악의 태초 시절을 들여다보면, 음악은 신을 찬양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하던데요?”

 

그런데 신을 찬양하는 도중에도 그 음악에 맞춰서 신나게 춤을 췄을 거야. 그러니 음악의 본질은 역시 댄스인 거지.”

 

이쯤 되니 더 이상 반박이 불가능해졌다. 그렇다. 실은 음악의 본질은 댄스이자, 즐거움이다. 우리는 음악을 듣고 그저 즐기면 되는데, 왜 음악을 두고 뭐가 잘났느니 못났느니 복잡하게 따지려 들까. 물론 어떤 음악을 듣고 별로라는 느낌을 받는 건 어쩔 수 없겠으나, 우리는 때때로 어떤 음악을 폄하하기 위해 온갖 논리와 표현을 갖다 붙이며, 자신이 듣는 음악이 가장 우월하다는 걸 어떻게든 증명하고 싶어 한다.

 

 

 

▲ 지금이야 레전드로 칭송 받는 그룹이지만, 이 그룹이 한참 활동하던 70년대엔 상업성 짙은 음악의 대표로서 언급되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심지어, 두 여성 멤버의 큰 키와 굴곡진 몸매가 주요 인기 요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노래 가사만 하더라도, 17세 소녀가 뿜어내는 넘치는 흥에 대한 찬양만이 가득하지 않은가.

 

 

음악은 그 어떤 것보다도 자유로워야 한다.

 

나는 인간이 음악 속에 있을 때만큼은 그 어떤 때보다도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방종이라 불러야 할 정도로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어떻게 인간을 포장하든,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욕구는 식욕과 성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로 태어난 원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것들을 일정부분 억누르며 살지만, 이런 사회적 합의를 벗어던진 인간에겐, 성욕과 식욕이라는 본질만이 남는다. 이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음악이 이런 합의를 벗어던진 합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음악이 반드시 숭고한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 음악이란 정신이고, 음악이란 수련이라 말하는데, 어쩌면 음악을 향해 이런 기준을 세우려는 것부터가 오히려 음악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행위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음악을 통해 철학이나 사상, 위로를 전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솔직히 나도 그저 즐기기만 하는 음악보다는 뭔가 깊이를 추구하는 음악을 더 좋아한다. 단지 여기서 하고 싶은 얘긴 뭐냐면, 음악에 깊이를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음악의 깊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다른 음악을 폄하하는 일은 지양하자는 얘기다. 음악의 본질은 즐거움이고, 따라서 음악이란 그저 즐거우면 제 몫을 다하는 것이다. 세상에 숭고한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수단은 음악 외에도 충분히 많다. 문예나, 미술, 종교, 정치, 사회운동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것들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걸, 왜 굳이 음악까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느냐 이 말이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 없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사회적 합의는 세상을 평화롭고 안정적이게 만드는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물론 그 합의를 이루는 과정에서 사상의 충돌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사상의 충돌이 범죄나 전쟁 등의 물리적 충돌로 이어지지 않도록 만드는 것도 사회적 합의가 낳은 긍정적 결과다. 그러니 사회적 합의는 꼭 이뤄져야 한다. 다만, 인간은 무언가 억눌리면 그것을 표출하지 않고선 못 견디는 본성을 지녔다. 그래서 수많은 반란과 혁명이 역사 속에 반복되는 것 아니던가. 그러니, 인간에겐 억눌린 본성을 표출할 탈출구가 필요하다. 음악마저 숭고한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며 억눌러버리면, 인간의 본성을 표출할 수단은 과연 뭐가 남을까. 어쩌면 음악을 통해서 표출하는 것이 가장 평화롭고 이성적인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내가 고3 때, 교실에 아이들은 틈만 나면 이 노래를 틀고 몸을 들썩거리곤 했다. 가사는 온통 술 얘기뿐인데 말이다. 그 때마다 교실은 교실이 아닌 나이트클럽이 되고 말았다. 얼마나 공부가 싫었으면 그랬을까 싶다. 그 광경이 선생님께 보이면, 선생님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당장 끄라고 소리치고. 어쩌면, 이런 음악이야 말로 음악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음악일지도 모른다.

 

 

음악을 차별하는 사람은 사람도 차별하기 쉽다.

 

음악에 대한 차별은 인종차별보다 더 나쁘다.”

 

흔히 비틀즈의 존 레논인가 폴 매카트니가 했던 말로 알려져 있는 격언이다. 사실 비틀즈 멤버가 저런 말을 했다는 건 일단 유명해져라. 그럼 똥을 싸도 사람들이 박수를 쳐줄 것이다.”라는 말이 앤디 워홀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것만큼 출처가 불분명하다. 다시 말해, 비틀즈 멤버들은 저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 하지만 저 격언의 출처가 어디가 되었든지 간에,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토록 유명해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나 또한 저 말에 동의한다.

 

어떤 사람이 무슨 음악을 듣는다고 해서, 우리는 그 사람을 함부로 질 낮은 사람 혹은 질 높은 사람으로 쉽게 규정한다. 그러나 그 사람의 듣는 음악이 그 사람의 전부를 말해주지는 않는다. 물론 음악 취향이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줄 수는 있겠지만, 그 사람의 전부는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사실 사람을 두고 질이 높다느니 낮다느니 따지는 것부터가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사람을 두고 함부로 질을 따지는 것부터 차별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인간 세상은 결코 완전한 평등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는 염세적 사고가 심한 사람이긴 하지만, 내가 직접 대해야 할 사람들을 앞에 두고 그런 차별적인 생각을 하고 싶지는 않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음악을 두고 사람을 쉽게 판단하면 그 사람 본인에게 가장 큰 손해다. 음악을 통해서 상종해야 할 사람과 상종하지 말아야 할 사람을 쉽게 판단하면, 그만큼 그에겐 멀어져야 할 사람이 많아지고, 인생에 고립이 점차 심해지게 된다. 인간관계를 떠나서, 세상에 내가 마음에 안 드는 음악, 더 나아가 내가 폄하하고 싶은 음악이 점차 많아지는 건, 그 자체로 스트레스 아니겠는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지, 싫어하는 음악이 많아지는 게 과연 좋은 일일까. 그러니 우리는 음악을 대할 때 좀 더 열린 사고를 갖고 대할 필요가 있다. 내가 대해야 할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 펑크 록 밴드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는 영국 TV 방송 역사상 최초로 “Fuck”이라는 단어를 송출시키는 희대의 방송사고를 일으켰다. 이토록 악동이었던 이들이 지금은 교과서에 나온다.

 

 

안 그래도 삭막한 세상, 음악으로 꼰대처럼 굴지 말자.

 

난 어차피 사람은 다 속물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속물이다. 나는 오히려 남들로부터 진지해서 다가가기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더욱 격렬히 속물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제 아무리 숭고한 예술을 하고, 대단한 사회운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는 속물적인 면이 조금이라도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그런 속물적인 면을 남들 앞에 잘 감추면서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타인의 음악 취향이 속물적이라고 욕을 하는 건, 좀 비약이 심할지도 모르겠지만, 제 얼굴에 침 뱉기라고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타인의 음악 취향이 속물적이라 폄하하는 습관 또한 자기 자신을 높이려는 속물적 본성에서 기원한 거라고 본다. 그러지 않고서야 타인의 음악 취향을 그렇게 쉽게 폄하할 수 있겠는가.

 

클래식 리스너는 재즈 리스너를 폄하하고, 재즈 리스너는 록 리스너를 폄하하며, 록 리스너는 힙합 리스너 혹은 EDM 리스너를 폄하한다. 꼰대의 순환인 셈이다. 이들이 타 장르 리스너를 폄하하는 근거는 딱히 변하지 않았다. 그들의 폄하 근거는 모두 그 음악들이 지극히 속물적이라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실제로 재즈가 처음 대중 앞에 등장했을 당시에, 재즈는 퇴폐의 상징이었다. 연회장에서 틀어 놓고 처음 본 사람들끼리 몸을 부비기 위한 음악이었다는 거다. 지금 재즈가 고급 음악 취급 받고 있는 걸 생각하면, 당시 재즈가 받았던 폄하는 상상하기 힘들다. “음악의 본질은 댄스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며, 내게도 전해줬던 그가 이런 말도 남겼다.

 

실은 모차르트나 베토벤도 그 시절의 록 스타였던 거야. 그 시절의 최신 유행을 선도하는 사람이었던 거지. 요즘 랩으로 뜨는 그런 애들이 바로 이 시대의 록 스타인 거야.”

 

 

 

▲ 2016년, 오바마 미 대통령과 힙합 뮤지션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가 백악관에서 만남을 가졌다. 이들은 서로 여러 사회 문제에 관한 토의를 진행했다고 한다. 켄드릭 라마는 현재도 가장 트렌디한 스타로 떠오르는 인물이다. 이를 보면, 더 이상 힙합의 위상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힙합은 물질만능주의를 부추기기 때문에 저급하다느니, EDM은 클럽에서 음란한 춤이나 추기 위한 음악이기 때문에 저급하다는 그런 폄하, 함부로 하지 말자. 그런 식으로 한 장르를 싸잡아 욕하면, 그 땐 꼰대가 되는 거다. 재즈를 욕하던 클래식 리스너처럼, 록을 욕하던 재즈 리스너처럼 말이다. 사실 음악 가지고 꼰대처럼 구는 사람들은 그만큼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 자신이 내세울 수 있는 게 적다보니, 그나마 자신의 음악 취향을 내세우기 위해 자신과 다른 음악 취향을 폄하하는 것이다. 사실 꼰대는 다 그런 식으로 탄생한다고 본다. 꼰대란 원래, 주로 나이 든 사람들을 칭하는 말 아니던가. 나이가 드니까, 그만큼 신세대로부터 느끼는 위협이 많기 때문에, 신세대들을 폄하하고 싶어지는 거다. 하지만, 꼰대가 타인을 폄하한다고 자신의 가치가 올라갈까? 절대 그렇지 않다. 그저 폄하를 받은 사람들로부터 오는 반발만 심해질 뿐이다.

 

취향이 록이고 재즈인데, 억지로 힙합이나 EDM을 들으라는 얘기가 아니다. 취향은 취향대로 내버려두되, 자신과 다른 음악 취향을 함부로 폄하하지는 말자는 얘기다. 물론 조금 꼰대 같다 싶을 정도로 강한 음악적 고집이, 좋은 음악을 계승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다만, 강한 음악적 고집을 내세우면서도, 타 음악 장르에 대한 폄하를 지양하는 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좀 더 평화로워지지 않을까. 무엇보다 먼저, 당신의 시각에 평화가 찾아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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