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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언니네 이발관(Sister's Barbershop) - 홀로 있는 사람들

인생명반 에세이 52: 언니네 이발관(Sister's Barbershop) - 홀로 있는 사람들

 

혼자서도 외롭지 않기 위한 춤

 

■ 혼자 추는 춤을 닮은 삶

춤이란 보편적으로 슬픔보다는 기쁨을, 고독보다는 조화를 드러낸다. 그런데 혼자 추는 슬픈 춤이라고 한다면, 어떤 춤일지 상상이 되는가. 춤이라는 게 항상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어야 하는가. 춤이라는 게 항상 화려해야 하는가. 춤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출 수 있고, 혼자 듣는 음악에 어깨만 들썩이는 것도 춤이라 할 수 있다. 우린 그동안 춤이라는 걸 어렵게 생각해왔던 게 아닐까. 삶을 생각해보면, 혼자서 춤을 추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생기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꽤 많은 시간을 혼자 추는 춤으로 삶을 견뎌왔을지도 모른다.

삶은 때론 혼자 추는 춤을 닮았다. 춤이 언제나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듯, 내 삶도 언제나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갖고 있는 춤에 대한 고정관념은 사람들이 삶에 대해 가진 고정관념과 닮았다. 아무도 보지 않는 춤도 춤이며, 슬픈 춤도 춤이다. 마찬가지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모습 또한 삶의 일부이며, 삶에 늘 기쁨만 있을 수는 없다. 그런데 왜 우리는 삶을 살며 보여주기 위한 것들에 신경을 많이 쓰며, 우리가 가진 슬픔을 필사적으로 감추고 남들에게 밝은 모습만 보여주려 애쓸까.

여기,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사는 것에 견딜 수 없는 피로를 느꼈던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선율을 만들고 가사를 쓰면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는 걸 업으로 삼았던 사람인데, 그의 가사를 보면 그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사는 것에 많이 지쳤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의 가사가 언제나 그를 대변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내가 그를 가사를 통해 봤을 땐 그렇게 보였다. 그의 이름은 이석원. 2017년에 그는 자신의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여섯 번째 정규앨범을 발표하면서 더 이상 음악을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 언니네 이발관 멤버들 좌측부터 이능룡(기타), 이석원(기타, 보컬), 전대정(드럼)

■ 마지막 언니네 이발관

언니네 이발관은 “아소토 유니온”의 김반장, “가을방학”의 정바비, “나이트오프”의 이능룡, 이렇게 이름만 대도 놀라운 걸출한 뮤지션들이 거쳐 간 밴드로도 유명한데, 그럼에도 그 팀의 중심은 언제나 이석원이었다. 이석원이 더 이상 곡을 만들지 않는다면, 팀은 사실상 유지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그렇게 여섯 번째 정규앨범인 “홀로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마지막 앨범이 되었다. 대한민국 밴드 음악의 한 시대를 책임졌던 대들보 같은 존재가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버린 셈이다. 이석원은 오래전부터 자신이 음악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이젠 그 생각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강해졌기에 그런 거라는 설명만을 했을 뿐, 더욱 자세한 사정은 말하지 않았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2010년 이후로는 뮤지션으로서 세운 업적 못지않게, 에세이 작가로서 세운 업적이 부각되기 시작했고, 음악보다도 글쓰기가 훨씬 자신에게 어울린다는 걸 깨달았기에, 이제야 제 적성을 찾았기 때문에 음악을 놓아버린 거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너무 쉽게 음악을 놓기로 결정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이런 식으로 단번에 무너뜨려버렸으니 말이다. 실은 그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언니네 이발관을 역사의 한 장면처럼 여기고 있다는 것을. 그러나 그에겐 그런 세간의 말들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니, 조금은 중요했을지라도 그에겐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게 있었을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가 그게 뭔지 말을 하지 않았으니. 그런데 왜일까. 그가 그것에 대해 말을 하지 않은 건, 이미 언니네 이발관의 마지막 앨범에서 다 털어놓았기 때문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홀로 있는 사람들” 앨범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가사다. 무심한 듯 담백한 사운드와 달리, 가사를 보면 마지막다운 마지막을 만들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이별이라는 요소를 가사 곳곳에 배치하긴 했지만,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그보다 더욱 두드러지는 것은, 자신은 과거에 겪은 이별과는 별개로 오래전부터 고독한 사람이었노라 고백하는 모습이다. 이런 모습에서 마지막을 준비하기 위해 고심했다는 인상을 받게 된 건, 이 앨범만큼 이석원이라는 사람에 대해 잘 말해주는 앨범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자신이 만든 노래를 듣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말을 건네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식으로 떠나는 걸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당신이 저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어요. 저는 원래 이런 사람인 걸요.”

 

 

▲ 2번 트랙 “창밖엔 태양이 빛나고”

■ 고백을 넘어 작품으로

이 앨범의 가치는 그의 고백이 담겨 있다는 점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그보다도 그의 고백이 보편에 닿게 되는 과정을 잘 살펴보아야, 이 앨범의 참 가치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이 앨범에 쓴 가사들을 그저 고백이라는 말로 간단히 정의해버리는 건 아까운 일이다. 나는 최근 좋은 가사와 좋은 시는 다르다는 것에 대해 많은 고찰을 하고 있었는데, 그 차이를 자세히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이 앨범을 깊이 듣고 있으려니, 왠지 그 방법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 좋은 시가 꼭 좋은 가사가 되는 건 아니며, 좋은 가사가 꼭 좋은 시가 되는 건 아니다. 좋은 시와 좋은 가사, 그 둘은 무척 닮았지만, 실은 다르다. 작사가로서의 이석원은 이 차이를 명확히 이해하는 사람이며, 그래서 그는 이 앨범을 통해 시에는 없는 가사의 미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앨범의 가사를 잘 들여다보면, 자신의 가사를 단순 고백을 넘어 작품으로 만들기 위한 의도적인 노력이 들어갔음을 느낄 수 있는데, 그런 면이 가장 잘 드러나는 트랙이 2번 트랙 “창밖엔 태양이 빛나고”다. 이 곡은 내가 언니네 이발관의 모든 노래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고, 작사가 이석원의 천재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곡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앨범은 전체적으로 펑크(Funk)의 영향력이 두드러지는데, 2번 트랙 같은 경우엔, 이 앨범 수록곡들 중 정통 록(Rock)의 문법을 가장 잘 따르고 있는 격정적인 트랙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마저도 몽환적이고 극적이다. 다채로운 곡 구성으로 화자의 심정이 순식간에 바뀌는 모습을 표현했는데, 이는 지난 인연에 대한 추억과 이별 후에 홀로 청승에 젖는 현실이 뒤죽박죽 섞이는 풍경을 묘사하기 위함이다.

 

 

▲ 이석원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가을비를 너는 봄에 맞는다. 그 비가 나를 울린다. 피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어. 온 세상이 너와 날 적시네.”

여기까지는 왠지 구슬프면서도 연한 긴장이 흐르는 것 같은 음색을 내뿜는데, 곡의 진행을 갑자기 끊어버리듯 곡은 순식간에 밝고 잔잔한 음색을 뿜어낸다.

“아침이면 눈을 뜨고 키스를 하고, 밥을 먹고. 오 티비를 함께 보다가.”

그러다 곡은 다시 진행을 끊듯이, 웅장한 드럼 소리를 전면배치하며 갑자기 긴장감을 몰아세우는데, 앞선 가사에선 연인과의 기쁜 추억을 묘사했음에도, 가사의 다음 줄부터는 순식간에 화자가 이별 후 홀로 청승에 젖어가는 모습을 묘사한다.

“그대 없는 나는 기쁨에 겨워, 이 빗속을 홀로 걷는다. 되돌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어.”

이게 음악 없이 글만 보면 아리송한 느낌만 들지만, 글과 음악이 합쳐지면 추억을 그리는 화자의 내면과 청승에 젖은 화자의 외면을 동시에 묘사하고 있다는 느낌이 분명하게 다가온다. 음악이 아니면 어떻게 이런 묘사가 가능하랴. 어떻게 이런 묘사를 가슴에 와 닿게 할 수 있으랴. 음악이 가사의 기능을 확장시키고, 가사 또한 음악의 기능을 확장시키는 모습이다.
 

■ 개인의 고백이 보편의 감성에 닿게 된다는 것

이석원은 이 앨범 속 화자의 모습을 고독하게만 그리지 않고, 밝은 모습마저도 적당히 묘사함으로서, 이 앨범이 보편적 감성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한 것 같다. 일례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이름 한 번쯤은 꼭 들어봤을 “아이유”와의 듀엣을 3번 트랙에 수록한 점을 들 수 있다. “누구나 아는 비밀”은 반복되는 이별로 사랑에 관해 냉소적 태도를 갖게 되었지만, 사랑을 가슴에 품을 수 있는 능력까지 상실하지 않았음을 드러내며, 영원을 향한 그 희미한 희망을 찬미하는 노래다. 이를 통해 이 앨범 속 화자가 마냥 독특한 염세주의자가 아님을 청자에게 호소하며 화자는 보편성을 획득한다. 냉소에서 희망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부드럽게 전달하는 재치마저도 돋보인다.

 

 

▲ 8번 트랙 “홀로 있는 사람들”

이렇게 얻은 보편성으로 앨범 속 화자는 다시 이별과 고독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한다. 보편성을 획득한 후로 이야기하는 것이니, 청자에겐 훨씬 더 자연스레 이 모든 것이 와 닿게 되리라. 그러다 7번 트랙 “영원히 그립지 않을 시간”에선 자신도 이렇게 되고 싶어서 된 건 아니라며, 자신도 언젠가 희망을 바라던 때가 있었노라 고백한다. 여기에서 놓쳐가던 보편성을 다시 획득하는데, 다음 8번 트랙 “홀로 있는 사람들”에서는 희망이 아닌 고독을 통해 보편성을 획득하려는 새로운 움직임을 전개한다. 앨범 속 화자는 사람들로부터 유독 고독한 사람으로 취급 받아왔지만, 실은 그가 가장 말하고 싶었던 게, 이런 사람이 자신만 있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8번 트랙에서 다시, 시가 아닌 가사이기에 가질 수 있는 미학을 발견할 수 있다. 이 트랙을 무심코 듣다가, 가사에 커다란 감동을 받아서, 음악을 끄고 가사만 읽어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음악과 함께 느꼈던 그 감흥이 모두 휘발되어버린 느낌을 받아버린 것이다. 표현은 진부하고 상투적이었으며, 전개는 개연성이 없어보였다. 그런데 다시 음악과 함께 들어보니, 시어의 상투성이 따분함이 아닌 일상적 편안함으로 치환되었고, 뜬금없게 느껴지던 전개마저도 부드러운 위로가 되어 다가왔다. 그렇게 고독으로 보편성을 획득한 화자는, 고독한 사람이 당신만 있는 건 아니라고, 우리는 모두 고독을 앓고 있다며, 따스하고 부드러운 위로를 건넨다.

 

■ 우리의 삶은 전시되기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9번 트랙 “혼자 추는 춤”에 이르러, 위로는 다시 날선 외로움이 되어 청자의 마음을 관통한다. 이것은 왠지 1번 트랙 “너의 몸을 흔들어 너의 마음을 움직여”와 수미상관을 이루는 것 같다. 사람들은 때론 혼자 온 세상 갈 때도 혼자 가는 건데, 홀로 되는 것이 뭐가 두려운 것이냐 말하기도 하지만, 탄생과 죽음을 이어주는 삶이란 만남을 빼놓고선 형성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별의 아픔에 신음하다가도 다시 만남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리라. 그러나 혼자 왔다 혼자 가는 세상이라는 말은 다르게 보자면, 인간에게 있어 고독이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라는 걸 얘기하는 것 아닐까.

 

 

▲ 9번 트랙 “혼자 추는 춤”

 

▲ 1번 트랙 “너의 몸을 흔들어 너의 마음을 움직여”

사람들은 흔히 고독과 청승에 젖은 사람을 한심하게 생각하지만, 고독이 인간의 본연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라 한다면, 고독과 청승을 한심하게 여기는 통념이 늘 옳다고 할 수 있을까. 1번 트랙에서 화자는 가사를 통해 이렇게 얘기한다.

“난 싫어 이런 내 모습이. 난 싫어 이런 내 세상이. 하지만 나는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는 걸. 이게 나, 나야. 나야.”

진정으로 고독해지기 위해선, 남들에게 내 고독을 설명해야만 하는 이런 삶의 역설이 우습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이 역설 또한 받아들이지 않으면 삶은 이어지지 않는다. 이석원은 이 앨범을 통해, 고독이라는 자기 본연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음악에서 은퇴하며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 앨범을 통해 전하는 삶의 역설 또한, 역설적이게도 이석원 혼자서 이뤄낸 것이 아니었다. 10년 넘게 음악적인 면에서 이석원의 곁을 지킨 “이능룡” 덕분에 이 모든 것이 좀 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실현될 수 있었고, 다소 실험적이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런 시도들을 부드러운 두드림으로 녹여내며 보편성을 불어넣은 “전대정”의 드럼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이석원은 음악보다 좀 더 고독에 가까워질 수 있는 글쓰기를 택하며, 삶의 역설에서 좀 더 벗어날 수 있는 길, 인간 본연의 모습에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을 향해 떠났다. 그에겐 남에게 보여주는 삶보다, 혼자 춤추는 시간이 훨씬 소중했던 것이었다. 그렇다고 삶의 역설이 그에게서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이런 역설과 싸우며 청승에 젖는 자신의 모습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그의 모습처럼, 언젠가는 우리 본연이 갈구하는 삶을 위해 지독하게 청승맞은 고독 속으로 들어가야 하리라. 그 길에서 이 앨범이 나와 당신의 작은 쉼터가 될 수 있으려나. 이 앨범 속 담백한 음색처럼, 그 지독한 청승들을 상냥하게 껴안을 수 있게 될까. 그렇게 되기를 희망해본다. 이 앨범과 함께 혼자서 춤을 추는 시간이 늘어나길 바라본다. 혼자서 춤을 추는 시간만큼은 혼자서도 외롭지 않기를 바라본다.

  


트랙리스트

1. 너의 몸을 흔들어 너의 마음을 움직여
2. 창밖엔 태양이 빛나고
3. 누구나 아는 비밀 (with 아이유)
4. 마음이란
5. 애도
6. 나쁜 꿈
7. 영원히 그립지 않을 시간
8. 홀로 있는 사람들
9. 혼자 추는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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