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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리조(Lizzo) - Cuz I Love You 인생명반 에세이 62: 리조(Lizzo) - Cuz I Love You 프로파간다를 초월한 다양성의 승리 ■ 예술과 정치 사이, 작품과 프로파간다 사이 “간란산에서 그것이 전부 보이지는 않지만 가니타에는 건설 도중에 중단된 공사가 너무 많은 것 같다. 「마을 행정이 활발하게 추진되는 것을 막는 고루한 책동자 같은 녀석이 있는 게 아냐?」 하고 N군에게 물었더니, 이 젊은 구의원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그만둬, 그만둬」라고 했다.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무사의 주먹구구식 장사, 문학가들의 정치 참견이다. 가나타 마을의 행정에 대한 나의 주제넘은 질문은 전문가인 구의원의 비웃음을 초래하는 바보스러운 결과로 끝났다. 어쨌든 예술가의 정치 참견은 실수의 근원이다. 한 사람의 가난한 글쟁이에 지나지 않는 나는 간란..
오늘도 무사히(Omuhi) – 송곳 인생명반 에세이 61: 오늘도 무사히(Omuhi) – 송곳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 실패 언저리에서 ■ 도망치듯이 도착한 나의 고향 이십 대 후반, 그러니까 2018년 5월 말 즈음이었다. 내가 대구에서 살기로 결심했던 것이. 어느덧 시간은 흐르고 흘러서 2021년 9월, 내 나이 서른이 되었다. 내가 대구에 살기로 결심했던 당시를 떠올려본다. 나는 무슨 마음으로 여기에 왔을까.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새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도망치고 싶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당시에 나는, 내가 믿었던 종교에 대해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고, 그로인해 나는 내 종교를 잃었다. 내가 내 의지로 버린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 때 내 모든 것이었던 유일신의 곁을 떠나는 일이 꼭 그렇게 쉬운 일은 아..
검은잎들(Leaves Black) - 책이여, 안녕! 인생명반 에세이 60: 검은잎들(Leaves Black) - 책이여, 안녕! 앉아서 갈구하기보다 일어나서 쟁취하기로 다짐하기까지 ■ 추억은 음악을 만든다“극장에서 누구랑 어떻게 보는가가 사실 영화의 완성이거든요. ‘누구랑 어떤 길을 걸어가서 어떻게 보고 나왔느냐’까지가 영화의 완성이라고 생각해요.” 왕가위 감독이 자신의 영화 철학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이다. 나는 본래 영화관에 잘 가지 않는다. 지금 역병 사태 때문에 그런 건 아니고, 그전부터 그랬다. 영화를 누구와 같이 보는 것보다, 집에서 혼자 보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일단 최신 영화에 별 흥미를 가지지 않은 탓이기도 하고, 어쩌다 끌리는 영화가 개봉해도, 같이 보러 갈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내 취향에 맞춰줄 사람을 주변에서 찾는 게 힘들다. 취향의..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 Hunky Dory 인생명반 에세이 59: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 Hunky Dory 화성에서 온 괴짜가 쓴 창세기 ■ 나만의 세계를 지켜나간다는 것 회사 생활에 제대로 적응할 수가 없어 고민이 심해지던 무렵이었다. 너무도 바쁘게 돌아가는 회사 업무 때문에, 나는 나의 내면을 제대로 돌볼 시간이 없었다. 업무 중에는 물론이고, 퇴근 후에도 버거운 업무에 지쳐서, 나의 내면을 돌볼 여유 따윈 없었고, 그저 먹고 누워서 싸구려 유희에 빠져있다 잠들기 바빴다. 양질의 독서와 글쓰기를 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아, 나의 세계는 넓어지지 못하고, 점점 세상이 내게 요구하는 나 자신의 모습에 맞춰 살기 바쁜 삶이 이어졌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이제껏 가꿔왔던 나의 내면세계가 점점 빛을 잃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나..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Manic Street Preachers) - The Holy Bible 인생명반 에세이 58: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Manic Street Preachers) - The Holy Bible 찬송가보다 거룩한 신성모독 송가 ■ 신성모독은 예수의 가장 큰 업적 예수는 사형수였다. 유일신 예수가 사형에 처하게 된 죄목은 역설적이게도 신성모독이었다. 예수는 사형으로 자신의 신성함을 증거했다. 신성모독이야말로 예수 자신의 신성을 증거할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수단이었다. 이런 말이 누군가에겐 금기처럼 느껴지겠으나, 이는 사실이다. 기독교 신자 입장에서는 예수가 유일신이지만, 그 당시 유대인의 관점에선, 아니 지금도 유대인들에겐 예수란 그저 신성모독을 저지른 사형수에 불과하다. 그런 사형수를 신성하고 거룩한 유일신으로 섬기는 집단이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큰 세력 중 하나를 차지하고..
폴립(POLYP) - For Our Misty Lives 인생명반 에세이 57: 폴립(POLYP) - For Our Misty Lives 지독할 정도로 상냥함을 갈구하는 청춘의 외침 생에 있어 기쁨의 순간은 짧고, 슬픔의 순간이 대부분이라며 불평하던 때가 많았다. 하지만 돌아보면, 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슬픔 속을 살아갈 때, 기쁜 순간들을 추억하는 것만큼 큰 힘이 되었던 건 없었다. 찰나의 기쁨이 영원 같은 슬픔을 이긴 것이다. 생은 어쩌면 기쁨으로 생을 대부분 채우기 위한 과정이 아닌, 영원 같은 슬픔을 이길 수 있는 찰나의 기쁨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취라는 것이 그토록 힘들고, 연애와 결혼이 그토록 괴로워도, 여전히 그것들을 갈구하며 생을 이어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마저도 무력하게 만들어버릴..
탐쓴(Tomsson) - NON-FICTION 인생명반 에세이 56: 탐쓴(Tomsson) - NON-FICTION 현실은 언제나 픽션보다 잔혹하다 ■ 작년 여름과 올해 가을 인생명반을 통해 그에 대한 글을 쓰고, 웹진 빅나인을 통해 그와 인터뷰를 가진 지도 어느덧 1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돌아보면 1년 사이에 나 자신에게 많은 일이 있었고, 그로 인해 나에게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작년만 하더라도, 전염병으로 세상이 이렇게 암울하게 물들어버릴 줄은 몰랐지만, 어쨌거나 나는 역병이 도는 세상 속에서도 삶을 유지하고, 변화를 거듭해왔다. 그 변화는 나의 의지보다는 운명에 이끌린 것에 더욱 가까웠다. 내가 맞이한 운명의 중심에 래퍼 탐쓴(Tomsson)이 있었다. 내가 방금 그에 대한 글을 쓰고, 인터뷰를 했노라 말했던 그 사람이다. 나는 언제나 나..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 - WE ARE CHAOS 인생명반 에세이 55: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 - WE ARE CHAOS 공포의 아이콘이 베푸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 ‘나’보다는 ‘우리’를 부르짖게 되었다는 것 그가 불렀던 노래 중에 제목부터 ‘We(우리)’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곡이 있었던가? 내 기억엔 없었던 것 같은데. 나는 그 신곡의 제목을 봤을 때부터 눈이 동그랗게 변하며 뭔가 대단한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가사와 함께 노래를 감상하니, 이 사람, 역시 나이가 드니 변하긴 하는구나 싶었다.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매우 긍정적인 의미였다. 마릴린 맨슨, 그의 노래는 언제나 불편하고 날카로웠다. 그럼에도 마릴린 맨슨의 노래에 깊이 빠질 수 있었던 건, 그와 공유하는 불편함이 있었기 때문이고, 나도 언젠가 그의 ..